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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범한 가족이야기

[1화] 비혼 여성의 시작


l 비범한 가족이야기2012년 3월~10월까지 8개월 동안 발행되는 월간 칼럼으로, 우리 사회에서 조금은 다른 가족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의 기고 또는 인터뷰를 통해 꾸며집니다. 월마다 특별한 키워드를 중심으로 4~5편의 가족이야기가 펼쳐집니다. 

l 3월의 키워드 ‘시작’

비범한 가족은 만남으로 시작될까요, 헤어짐으로 시작될까요? 행복, 혹은 불안으로 시작될까요. 3월의 <비범한 가족 이야기>는 결혼- 자녀의 출산이라는 전형적인 시나리오를 벗어나는, 우리 사회의 비범한 가족들의 시작’을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3월의 첫 번째 이야기  [1화] 비혼여성의 시작
스스로 묻고 답해야만 얻을 수 있는 독립, 비혼 여성

                                                  언니네트워크/가족구성권연구모임     더지


비혼 여성에게 가족의 시작이란 무엇일까. 대개 ‘결혼’이 가족의 ‘시작’을 의미한다면 ‘결혼 안한’ 비혼은 ‘시작하지 않은’ 존재일까. 게다가 비혼 여성에게 ‘가족 이야기’랄 것이 있을까. 6년 전 마련한 소형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는 사십 대 중반의 비혼 여성 사뿡에게 질문을 던졌다.

독립, 첫 질문을 던지다


사뿡은 엄마, 언니들과 함께 살다가 친언니들은 하나둘 결혼하여 분가를 했고 자연스럽게 어머니와 둘이 살게 되었다. 20대 중반부터 직장에 다녔고, 다른 형제들의 도움없이 경제적으로 어머니를 부양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별 생각없이 자연스럽게 어머니를 부양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20대의 막내 동생이 짊어진 적지 않은 부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언니들에게 이제 와서 섭섭한 생각이 든다고 한다.



이전에는 먼저 결혼한 자녀가 부모를 모시는 일이 많았다고 하지만, 요즘에는 자녀들이 결혼해서 독립하면 마지막에 남겨진 자녀가 부모님과 함께 살며 돌보는 일이 많다. 특히 결혼하지 않거나 결혼 생각이 없는 비혼 여성들이 그런 위치에 놓이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울어야할지 웃어야할지 모를 이야기지만, 부모도 형제들도 ‘부모를 돌보며 사는 비혼 자녀/형제’에게 “결혼 안 하냐”고 찔러 볼지언정 굳이 비혼 상태가 ‘나쁘다’고 긁어부스럼 만들지는 않게 되는 것이다.


20대 후반, 결혼하고 싶다거나 결혼을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그녀에게 문득 ‘결혼을 하지 않으면 계속 엄마와 살게 되는 건가’하는 의문이 생겼다고 한다. 여자의 최종적인 독립은 결혼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있고, 그런 의미에서 언니들의 분가와 독립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결혼할 계획이 없는 비혼 여성에게 독립은 어떻게 살 것인지 스스로 묻고 답하는 순간들이 쌓여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일인 것이다.


“결혼을 하든 안하든, 나이가 들면 원가족으로부터 독립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니까. 모험을 해보자고 한 거지.”


독립이라는 모험을 기록한다면 : 표류기 또는 성장기

 

주인집에 딸린 셋방을 구해서 독립의 첫 걸음을 뗐다. 주택의 청결 상태가 좋지 않아 무척 괴로웠다고 한다. 가족이 아닌 타인들과 공간을 공유하는 경험도 썩 좋지는 않았다. 자신의 방에 누군가 몰래 들어왔다 나간 흔적을 발견한 이후에는 셋방을 빼고 다시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그 집을 나온 지 2년 만의 일이었다.

 

어머니와 몇 년을 살다가, 이번에는 다시 오랜 친구와 함께 집을 구해서 살았다. 집을 나올 때 어머니는 무척이나 서운해하셨다고 한다. 두 번째 시도는 비교적 괜찮았다. 함께 사는 친구와 서로 자연스럽게 배려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실패로 돌아간 첫 독립의 경험으로부터 타인과 함께 생활할 때 자신이 불편하다고 느끼는 것, 좋아하는 방식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보이지 않게, 두 번째 독립의 밑거름이 되었다. 자신의 집을 마련하여 혼자 살게 된 것은 친구와 5년여를 살고 헤어지게 된 2006년부터이다.

 


삶의 여러 분기점들 중에 자신의 독립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사뿡은 “지금 사는 집을 얻어 혼자 살기 시작했을 때”라고 대답했다. 사뿡에게 ‘혼자 산다는 것’은 ‘결혼을 안해서’라기보다 자신에게 적합한 생활방식을 찾은 것이라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수년 간 여러 가지 삶의 형태와 관계를 지나며 쌓아온 경험들은 모두 현재 자신의 삶을 방식을 만들어내기까지 필요했던 과정과도 같다.   


비혼 여성의 독립은 시작일까 완성일까


비혼 여성의 독립에는 많은 준비와 시간, 성찰이 선행된다. 결혼을 가족의 ‘시작’이라 말하기는 쉽지만, 비혼 여성의 ‘독립’을 ‘시작’이라 표현하기에는 독립까지 걸어온 시간의 무게감이 크다. 또 ‘완성’이라고 하기에는 이후에 펼쳐질 이야깃거리들이 무궁무진하다는 측면에서 부족한 듯하다. 완성이기도 하고 시작이기도 한 비혼 여성의 독립 역시 오늘날의 새로운 가족이야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